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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68820

다행이다, 서대문역에서

작성자
이상영
조회수
128
등록일
2023.08.31
수정일
2023.08.31

다행이다, 서대문역에서

 

 

낮술이 꼭 한 정류장을 지나치게 한다

지나쳤다

눈을 뜨니 삼양동 고가도로가 보인다

어린시절 동네에 왜 온 것인지

가는 길을 지나쳤는지

나는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길인데

 

다행이다

너무 늦게 알아챈 것은 아니다

몇 정류장만 돌아가면 제대로 간다

 

서대문역 지하로 들어서니 편안하다

스쳐지나간 늙은이를 아는 듯하다

그 선배

 

그 선배는 한 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

어떨 때는 지는 모습 대신에

나를 극단적으로 치올려 과장하며 칭찬했다

칭찬할 수 있는 우월함을 실컷 누렸다

그 칭찬으로

나는 늘 졌다

 

그 선배가 저만치 걸어온다

늙었다

쇠락했다

흔들거리며 걷는다

그래도 그냥 지나쳤다

 

반갑다고 하고

헤어지며 내가 또 질까 봐 겁이 났다

 

그냥 지나치는 것이 상수다

 

다시 가는 길에 들어섰으니

천만 다행이다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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