다행이다, 서대문역에서
낮술이 꼭 한 정류장을 지나치게 한다
지나쳤다
눈을 뜨니 삼양동 고가도로가 보인다
어린시절 동네에 왜 온 것인지
가는 길을 지나쳤는지
나는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길인데
다행이다
너무 늦게 알아챈 것은 아니다
몇 정류장만 돌아가면 제대로 간다
서대문역 지하로 들어서니 편안하다
스쳐지나간 늙은이를 아는 듯하다
그 선배
그 선배는 한 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
어떨 때는 지는 모습 대신에
나를 극단적으로 치올려 과장하며 칭찬했다
칭찬할 수 있는 우월함을 실컷 누렸다
그 칭찬으로
나는 늘 졌다
그 선배가 저만치 걸어온다
늙었다
쇠락했다
흔들거리며 걷는다
그래도 그냥 지나쳤다
반갑다고 하고
헤어지며 내가 또 질까 봐 겁이 났다
그냥 지나치는 것이 상수다
다시 가는 길에 들어섰으니
천만 다행이다